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토니오 이노키 (문단 편집) == 이노키즘 == 프로레슬링이야말로 모든 격투기의 교합점이라는 '''스트롱 스타일'''을 제창했던 만큼 실전 [[격투기]]에도 관심이 많아 [[이종격투기]] 시합을 여러번 치렀고, [[Rings]], [[Shooto]], Pancrase, UFO[* 초기 종합격투기 단체들 중 하나이며 [[UFC]]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 [[Pride]][* 이 경기들은 프로레슬링 거품이 꺼지면서 자연스레 지금의 종합격투기의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초창기에는 [[프로레슬링]]과 [[이종격투기]]의 사이 정도 되는 모습이었는데, 프로레슬러들을 위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등에 관여하여 초창기 이종격투기 붐을 조성했으며, '이노키 봄바예(INOKI BOM-BA-YE)'란 [[종합격투기]]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이 당시 봄바예가 Pride로부터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빼돌리는 바람에, 봄바예 프로모터가 [[야쿠자]]들로부터 협박을 받은 적도 있으며, 효도르 외에도 봄바예를 거쳐 간 선수들 중에는 [[료토 마치다]], [[리치 프랭클린]] 등 쟁쟁한 인물들이 많다. 하지만 [[프로레슬러]]를 격투기 시합에 보낸 것이 원인이 되어, 이후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몰락을 불러왔단 점 때문에 안티도 많이 있으며, 실제로 프로레슬러 중에서도 이노키를 싫어하는 사람이 꽤 있다. 이긴다면야 문제가 없었겠지만, 이노키가 이종격투기 시합에 내보낸 프로레슬러가 대부분 '''[[개박살]]''' 당했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이노키가 횡령 혐의로 실각한 후에도 그의 단체인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이러한 노선을 어느 정도 유지했다. 안토니오 이노키와 대척점에 있는 [[무토 케이지]]는 프로레스 러브 포즈를 미는 한편 신일본의 이런 노선에 회의를 느끼고 켄도 카신, [[코지마 사토시]]를 데리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이적했다. 무토 케이지는 프로레슬링을 배우기 전에 유도를 베이스로 하던 사람이라 실전에 능했기에 스즈키 미노루나 [[후나키 마사카츠]] 등의 후배들이 어쩌다 무토와 도장에서 겨룰 때 무토에게서 한 판이라도 따내는 날엔 엄청 기뻐했을 정도로 강자다. 무토 케이지 같이 유도나 아마추어 레슬링 등 실전을 겨루는 타분야에서 실컷 경쟁하고나서 프로레슬링 계에 온 사람들은 올림픽 같은 명예도 없는데 왜 프로레슬링에 와서까지 실전으로 겨뤄야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후지타 카즈유키, 스즈키 미노루는 아마추어 레슬링을 하고 프로레슬링 계에 와서까지 실전을 지향한 특이한 사례고, 안토니오 이노키도 프로레슬링 이전에 투포환만 해봤으며, [[UWF]] 계열의 대다수 선수들도 U계 프로레슬링을 하기 전에 다른 분야에서 실전으로 겨룬 일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다. 즉 무토 케이지 같은 사람들은 이노키즘이 지배하던 당시에 대해, '''실전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실전 지상주의를 내세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고 회고한다. [[사쿠라바 카즈시]]가 Pride에서 승승장구하자,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자기 단체의 레슬러들을 종합 및 입식 격투 무대로 대거 유입시켰는데, 이 격투무대에서의 실적으로 신일본의 벨트가 수여되는 암흑기가 도래하게 된다. [[사쿠라바 카즈시]]는 순수 프로레슬링이 아니라 캐치 레슬링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본 선수였지만, '''애당초 오로지 프로레슬링으로 나온 선수들은 그냥 말 그대로 쳐맞고 퇴출당했다.''' 어쩌다 격투 무대에서 승리를 챙긴 [[야스다 타다오]] 같이 절대로 챔피언감이 아닌 프로레슬러가[* [[스모]] 선수 시절엔 세키토리 출신에다 삼역까지 해볼 정도로 나름대로 성공적이었으나 프로레슬링 커리어는 은퇴때까지 원패턴 기술 & 콤보밖에 못썼다. 경기력은 [[로만 레인즈]]가 준수해보일정도. 기껏 쓰는 패턴이 상대를 스모의 손기술로 코너에 밀어 붙이고 다시 다른 코너로 보내서 몸통 태클 이걸로만 십수년을 우려먹었다.]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되기도 했고[* 야스다 타다오는 사생활도 그리 좋은 편이 못돼서 HUSTLE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할 때의 별명이 무려 '''빚쟁이왕(샤킨오)'''이었다. 소싯적부터 씀씀이가 말도 못하게 헤팠다고 하며 2007년에는 차안에서 연탄가스로 자살시도를 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경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2023년 기준으로도 어렵게 살고있다.], 밥 샙에게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 벨트를 주지를 않나[* 다만 밥 샙은 프로레슬러로서 기량이 완전 꽝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연기력이나 쇼맨십 등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후지타 카즈유키]]가 정통 프로레슬러인 [[텐잔 히로요시]]를 5분여 만에 초살시키고 챔피언이 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나가타 유지]]가 2003년~2004년 당시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최다 방어기록(10회 방어)을 하는데, 야스다 타다오의 프로레슬링적 기량은 꽤 문제가 있는 수준이었으나, 나가타 유지는 프로레슬링 센스와 기량 자체는 출중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미르코 크로캅에게 종합격투기 경기에서 완패한 게 그의 프로레슬링 커리어에 걸림돌이 되었으며, IWGP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잃은 뒤 효도르에게도 종합격투기 경기에서 초살당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이 시점에서 이미 이종격투기는 지고 완전히 종합격투기가 정립하였기 때문에 이념이나 훈련 방식 등이 완전히 다른 프로레슬러가 종합격투기에서 승리를 따내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프로레슬러가 복싱룰로 복서와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꼭 프로레슬러가 아니더라도 특정 무술을 익힌 사람이 그것만으로 타 무술의 룰로 열리는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힘든데다 종합격투기는 성격상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다. 브록 레스너나 기타 프로레슬러들 중 MMA에서 괜찮은 성적을 낸 사람들은 전부 기본 베이스가 있던 데다가 따로 종합격투기를 수련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프로레슬링 방식의 훈련만으로는 절대 종합격투기에서 활약할 수 없다.] 초창기 MMA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조쉬 바넷]] 등 프로레슬링 제일주의를 외치는 MMA 파이터들을 프로레슬링 링으로 불러들이고, 그의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바넷을 비롯하여 [[팀 실비아]], [[돈 프라이]], [[밥 샙]] 등의 파이터들이 대거 참가해 프로레슬링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